마장골 아침단상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마태복음 4:2]  

 

&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찬송가 505 장 

온 세상 위하여 

 

오늘도 예수님의 생명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으므로 

수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고 

 

우리 모두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대속의 죽으심을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때문에  

죄의 값을 치루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갔습니다. 

 

그리고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십니다. 

 

그러니  

얼마나 굶주리셨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에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고 표현됩니다. 

 

주리는 것은 육체를  

지니고 있으면 느낍니다. 

 

육체를 지니고 있는데  

배가 고프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먹지 않으면  

굶주리게 되어 있습니다. 

 

저도  

오늘부터 굶주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싶어서가 아니고요 

 

국가가 하라고 명령하는  

건강검진도  

작년이었는데 못받았고 

 

또 골드로 종합검진을  

금요일에 받기 위해서 

굶주리게 됩니다. 

 

시간을 내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마침 오늘 태국  

컹덕교회 예배당을 건축하고  

헌당감사예배에 가려는  

일정을 잡았다가  

 

취소되는 바람에  

시간을 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금주 금요일 아침에  

진료를 받아야 해서  

오늘부터 굶주리게 됩니다. 

 

사람은 

먹어야 배부르고  

먹지 않으면 굶주리고  

배가 심히도 고픕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사는 것이 

먹기 위해서  

사는 것 처럼 삽니다.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모릅니다.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이따금 사람들이  

착각할 정도로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인지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인지 

심히도 헷갈릴정도로 

 

사람에게는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기초요  

기본이 먹는 것입니다.  

 

먹는 것이 없다면 

힘도 없고  

재미도 없고 시간도 남습니다. 

 

하루에 먹는 시간도  

생각보다 많이 소요됩니다. 

 

먹기 위해서  

집에서 음식을 준비할 때도  

얼마나 시간도 만히 필요합니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  

무슨 음식을 만들것인가  

구상부터 시작해서  

 

식재료를 구입하고   

구입한 식재료로 준비해서  

요리를 합니다. 

 

이 과정이 시간도 힘도 

많이 필요하고 

 

그래서 결코 쉽게  

음식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무엇을 먹는다  

금나라와 뚝딱이 아닙니다. 

 

준비과정이  

많은 시간도 돈도  

체력도 솜씨도  

정성도 정말 필요합니다. 

 

굶지 않기 위해서  

먹는 것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고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매일 매끼를  

준비하여 먹는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먹는 것이 시험거리요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서 사는 것인지 

 

인간의 정체성이  

헷갈릴 정도로 

먹는 문제가  

정말 정말 중요합니다. 

 

최초의 아담도  

선악과를 먹는 것 때문에  

죄가 들어왔고  

 

죄 때문에 

사망이 찾아왔습니다. 

 

죄와 사망 때문에  

모든 인간들은 신음하고  

고통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죄와 사망이 아니면  

인간들에게  

크게 문제되는 것이 없습니다. 

 

먹는 것으로 인해  

인간이 어려움이 온 것처럼  

 

지금도 먹는 것으로 인해  

모든 인간들은  

고통받고 있고 

수고하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간 스스로 

수고하고 애를 쓴다고 

 

우리의 먹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불과 60년 전만 해도 

천수답인 환경이어서 

먹을 식량이 없어서  

 

배고프고 굶주렸던 시대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먹을 양식이 없어서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이 

세계 도처에 있습니다. 

 

그래서 기아대책기구라는  

NGO단체도  

오래전에 생겨났습니다. 

 

기아대책기구 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구호단체가 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에게 먹는 문제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요  

가장 기초입니다. 

 

먹어야 삽니다.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셨으니  

주리실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사생애를 마치고 

공생애 곧 속죄시기 첫 번째가 

 

험난하고  

사람이 살기에  

매우 부적합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어떻게 시험을 받습니까?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셔서 

매우 주리신 후입니다. 

 

정말 정말  

예수님이 

배가 고픈 상태입니다. 

 

육체를  

지니고 있는 사람은 

 

한끼만 굶어도  

하루만 굶어도  

힘이 없고  

심히 배가 고픕니다. 

 

눈이 들어갑니다. 

 

옛말에  

먹을 것이 없어서 

 

삼일 만 굶어도  

남의 집 담을  

넘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굶주리면  

못참는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먹는 것이  

사람에게는  

가장 필요하고  

기본이요 기초입니다. 

 

그런데  

사십 일을 먹지 못해  

굶주렸다  

인간의 한계를 경험하게 되고 

 

얼마나 고통스럽고  

얼마나 처참하겠습니까? 

 

이런 굶주림을  

예수님이 왜 당하셨을까요?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시며  

 

예수님은  

무슨 기도를 하셨을까요? 

 

40일 동안의  

기도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속죄 사역을 앞두고  

속죄의 시기를 가야 할  

 

예수님의  

사역의 핵심은  

예수님의 죽으심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먼저는  

이 사역에 대한  

감사의 기도였을 것입니다. 

 

또한 죽음의 사역에 대한  

아픔을 놓고도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받는 고통은  

 

인간이  

아무리 흉내를 내도  

낼 수 없는 고통입니다.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것은 인간들이  

흉내낼 수 없는  

아픔이요 처절한 고통입니다. 

 

욥기에  

기록되어 드러난 것 처럼 

 

자신을 죽여서  

죄인을 살려 달라는 기도를  

 

예수님이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면서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자기 꿈, 자기 비전,  

자기 욕망을  

이루어 달라는 금식 기도 아닌 

 

죄인을 살려달라는  

애절하고 간절한 기도가  

 

예수님이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면서  

드리는 기도가  

분명하였을 것입니다. 

 

구약의 모세의  

예표된 기도를 생각해봅니다.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하며 목숨을 걸고  

한 기도가 생각이 납니다. 

 

자신을 죽여서라도  

백성을 살려달라고 하는  

그 간절한  

기도가 생각이 납니다. 

 

모세의 40일  

금식기도도 생각이 납니다. 

 

왜 마귀는 첫날부터  

바로 시험하지 않았을까요? 

 

가장  

약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시험할 시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시험할 시기에 시험을 합니다. 

 

마치 

술에 취해서 무장해제 되어  

본성이  

나타나도록 기다리는 것처럼 

 

만약 예수님이  

여기에  

넘어가면 메시야 아닙니다.  

 

그러나 이기셨습니다. 

 

모세의 40일 금식기도와  

예수님의 금식기도는  

완전히 다릅니다. 

 

모세는  

성령의 도우심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육체적 고통과  

힘겨움이  

그대로 고스란히 받으시며 

금식기도 하셨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고서는  

답이 없고  

해결의 실마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금식하시며  

 

예수님께서  

무엇을 기도하셨고 

무엇을 구하고 원하셨을까요?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간절히 간절히  

구하셨음이 분명합니다. 

 

먹는 것 때문에  

넘어진 인간들을 위해  

예수님은 먹는 것으로 이기셔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살을 먹여 주시며  

배부르게 해주셨습니다. 

 

오병이어의 복도  

배부르게 하심이었고 

 

성찬을 통해  

자신의 살을 먹게 하심도  

영원히 굶주리지  

않게 먹여 주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은 주리시면서 

 

배고파하는 우리는  

배부르게 해주신 분이  

바로 대속의  

주인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아니시면  

인생의 영원한 배고픔과  

굶주림을 해결 할 수 없습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인간들 스스로 애를 써도  

영원한 굶주림을  

해결 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만이  

우리 모두를 영원토록  

배부르게 해주십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만이  

우리를 결코 굶주리지 않도록  

해주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인간의 영원한 굶주림을  

해결 할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진리를  

만방에 알려야 합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전하는 자가  

없이는 듣지 못합니다. 

 

전하는 자가 없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복음을 듣지 못하면 

 

혹여 육신의 빵은  

먹어서  

육체의 굶주림을 해결 받아도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알지 못해서 

 

굶주리며 영적 기아현상에서 

죽어갈 자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당장의 육신의 빵도  

기본이고 기초이겠지만  

 

이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전파하는 것은  

 

결코 미루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찬스를 얻든지  

찬스를 못 얻든지 

상관하지 말고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기회가 오든지 안 오든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전달하고 자랑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고  

육정영이 배부를 수 있도록 

 

땅끝까지  

예수님을  

전파하고 전파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가까운 곳에서  

먼 곳에 이르기까지  

아니 땅끝까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고 

배루르게 살도록  

 

복음을 전하는 일에  

충성 봉사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오직 예수님! 

 

2024.3.26.화 그인 김홍재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