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골 아침단상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태복음 4:3]  

 

& 시험을 이겨내는 승리자! 

 

찬송가 337 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오늘도  

예수님의 죽으심이  

사랑의 확증이심을 알고  

 

예수님의 죽으심을  

깊이 생각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을  

 

자신의 죽으심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신가를  

죽기까지 사랑하심을  

알게 해주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자신의 목숨보다  

우리를 더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갔습니다. 

 

성령에게  

이끌려서입니다. 

 

성령에 이끌러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성령에 이끌리지 말든지 

마귀에게 시험을 받지 말든지 

해야 하지만  

 

예수님은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곳 광야에서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십니다. 

 

하루도 아니고  

일주일도 아닙니다.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을 하셨습니다. 

 

얼마나 육체적으로  

배가 고프고 

주리셨을까요? 

 

배가  

홀쭉한 정도가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굶주린 상태입니다. 

 

얼마나 배가 고프면  

아이티 지진이 난후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얼마나 배가 고프고 

얼마나 먹을 것이 없으면 

흙으로  

과자를 만들어 먹겠습니까? 

 

오늘 마귀도 예수님께 

시험을 하는 내용이 비슷합니다. 

 

얼마나 배가 고프셨으면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시험하는 자  

곧 마귀가 제안을 했을까요? 

 

있을 수 없는  

제안이요 시험입니다. 

 

얼토당토 않는  

시험이요 제안입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시험을 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시험입니다. 

 

잔뜩이나 굶주려서  

신경이 예민하시고  

힘도 없고  

 

모든 것이  

귀찮기도 하시는  

육체적인 상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  

너무나 자극적이고  

예민한 시험을  

마귀가 시험을 합니다. 

 

마귀의 시험이  

언제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마귀 곧 시험하는 자가  

나타나서  

 

시험을 한다는 것을  

모순처럼 느껴집니다. 

 

어떻게 감히  

예수님을  

시험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원수 마귀는  

예수님을 공격하고 

나름 다 작전을 가지고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셔서 

심히도 굶주림 가운데 있는 

 

예수님에게  

먹는 것으로 시험을 한다 

 

이럴 때에 

넘어가지 않을 자가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육신을 입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육신을 지니신 예수님에게도 

굶주림이란 

 

인간의 몸을  

입으신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뭐든지 되었든지 간에  

먹을 것이면  

먹고 싶어합니다. 

 

인간의 몸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요 

가장 기초가 먹는 것입니다. 

 

먹으면 모든 것이  

다 될 것 같고 

살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러던차에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명해보라고 제안하면서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해보라고 시험을 합니다. 

 

떡덩이가 되게 해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떡덩이가 되게 해라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시험을 합니다. 

 

이것은 시험입니다. 

이것은 유혹입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혀서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유혹 곧 시험입니다.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면 

먹음직스럽고 보암직스럽고 

기력을 얻을 것 같고 

 

새 힘을 얻어 

소생할 것 같은 제안입니다. 

 

모든 것이  

한 순간에 해결될 것 같은  

제안을  

 

마귀가  

예수님에게 시험합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유혹처럼 거의 똑같이 

하는 시험입니다. 

 

인간은 배고플 때 

누구든지  

능력이 있다면  

떡을 만들어 먹고 싶어 합니다. 

 

그런 능력이 없어서 그렇지 

능력만 있다면  

뭐든지 다 하고 싶어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지금 예수님은  

사생애 곧 화목시기를  

다 마치고  

 

공생애 곧 속죄시기를  

막 시작한 싯점입니다. 

 

아직 모든 것이  

낯설기도 하고 

 

가장 기본적인  

먹는 유혹을 받게 될 줄이야  

 

하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기 때문에  

유혹을  

안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어도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습니다. 

 

유혹까지 받지 않고  

초월하신 분이시다면  

 

예수님이 신성만  

지니신 분이되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인성도 지니고 계셔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습니다. 

 

유혹을  

받는다고 죄가 아닙니다. 

 

유혹은 죄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나  

유혹은 받습니다. 

 

인간이 타락하면  

유혹을 더 많이 받습니다. 

 

인간이 유혹을 받아  

넘어졌기에 

 

어쩌면 인간이  

유혹의 연속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시험하는 자의  

유혹이 쉴새가 없습니다. 

 

원수 마귀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언제나  

두루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습니다. 

 

유혹하여 

어디에  

넘어뜨릴 자가 있는가 

 

기회를  

항상 엿보고 있습니다. 

 

타락하기 위해  

죄를 지으려고 하는 사람은  

 

유혹을 받는 것도  

죄의  

영향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시험하는 자가 

사십 일을 굶주린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네가 구원자이거든 

네가 능력이 있거든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하라고 유혹을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능력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지금 사생애의 시기를 마치고 

 

세례 요한의 세례를 통해 

우리의 모든 죄를 전가 받고  

속죄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님에게는  

완전한 하나님이시요 

완전한 사람으로서  

 

속죄사역을  

감당해야 할 분이십니다. 

 

얼마든지 이 돌들로도  

떡덩이를  

만들 수 있는 전능자이시고 

 

얼마든지 이 돌들로도  

하나님을 찬양할 자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한량이 없는 분이시지만 

 

우리의 모든 죄를  

전가 받아  

대속의 죽으심을 통해  

사랑을 확증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속죄사역의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십니다. 

 

인간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능력입니다. 

 

이 돌들로도  

떡덩이가 되게 하는  

능력이 있다면  

 

그 능력으로  

자신을 뽐내고  

 

그 능력으로  

떵떵거리며 살고  

싶어하는 죄성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유혹에 넘어가서 

 

능력을 가지고  

자기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죄성이 있지만 

 

그러나 주님을 만나면  

능력을 사모하지 않고  

예수를  

사랑하는 자로 바뀝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자로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계획하셨던 자로  

변화됩니다. 

 

인간이 

능력을 사랑하면  

 

그 능력을 키우기 위해  

타락하지만 

 

인간이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사랑하면  

 

능력을 키워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이 주신 능력으로  

충성스럽게  

사명을 감당하는 자로  

변화됩니다. 

 

예수님은  

속죄사역을 시작하여 

 

비록 원수 마귀에게  

시험을 받지만 

그 시험앞에서  

넘어지지 않습니다. 

 

묵묵히  

사명의 길을 가십니다. 

 

능력이 무한대하신 예수님이  

그 능력으로  

자기 욕심을 채우지 않고 

 

속죄사역의  

사명의 길을 가십니다. 

 

오늘도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묵묵히  

사명의 길을 가야 합니다. 

 

아무리 쉬지 않고  

원수 마귀가 유혹하며


온갖 시험으로 공격해  

온다할지라도  

 

늘 깨어서 기도하며 

원수 마귀의 시험을  

주가 주신 힘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오늘도  

원수 마귀의 시험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겨내는 승리자들이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오직 예수님! 

 

2024.3.27.수 그인 김홍재목사